[머니투데이 유동주 기자] [[the L] 고의로 립스틱으로 의류 훼손하면 '재물손괴죄+업무방해죄'…허위사실 유포나 위계·위력행사 없는 불매시위는 '적법']
세종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구성원들이 18일 세종시 어진동 유니클로 매장 앞에서 일본정권의 경제보복에 항의하며 일본 기업 제품 불매운동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2019.7.18/사진=뉴스1
일본 제품 불매운동이 확산되고 있는 지난 23일 경기 수원시의 한 유니클로 매장에 쌓아놓은 흰색 양말이 빨간색 립스틱으로 훼손되는 사건이 발생해 경찰이 수사를 벌이고 있다.(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2019.7.24/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내에서 일본 제품 불매운동이 확산하는 가운데 경기도 수원의 한 유니클로 매장에서 ‘빨간색 립스틱’으로 40여만원 상당의 의류가 훼손되는 사건이 발생해 논란이 되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지난 10일과 21일 두 차례에 걸쳐 수원 망포동에 있는 유니클로 매장 내 진열된 옷과 양말 등이 누군가에 의해 빨간색 립스틱으로 더럽혀지는 사건이 연이어 벌어졌다. 경찰은 고의적인 범행으로 판단하고 매장 내 CCTV영상분석 등에 나섰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이 일본 제품 불매운동의 일환으로 벌어졌다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적법한 소비자운동 차원에서 벌어지고 있는 불매운동에 찬물을 끼얹는 격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법원 판례나 법 전문가 의견에 따르면 불매운동 과정에서 푹력이나 위법행위가 수반된다면 업무방해죄를 구성할 수 있다. 소비자보호운동의 성격을 벗어나 형법 제314조 제1항의 업무방해죄에서 말하는 '위력'행사를 한다면 '적법'한 불매운동이 '불법'의 영역으로 넘어가게 된다.
유니클로 매장 앞 불매운동 집회나 1인 시위는 폭력적인 방법이 동원되지 않는 한에선 표현의 자유에 해당하는 적법행위로 평가받는다. 그런데 립스틱 테러를 비롯해 물리적 방법을 동원해 유니클로 매장이나 상품에 훼손을 하고 매장 손님이나 종업원에게 위협적 행동을 하는 수준으로 강도가 높아간다면 '업무방해죄'라는 불법행위에 해당될 수도 있다.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로 촉발된 일본 제품 불매운동은 현재까진 시민단체나 일반 국민들의 자발적 행동으로 이뤄져 왔다. 제품을 구매하지 않거나 구매하지 않겠다는 의사표현을 하는 방식으로 이어져 온 이런 불매운동은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아직까진 ‘불법’의 영역은 아니다.
김운용 변호사(다솔 법률사무소)는 “지금까지의 상황은 일본 제품 불매운동에 대해서 업무방해죄 등 불법적인 상황에 이르렀다고 보긴 어렵다”고 설명했다.
대법원도 소비자 주도의 불매운동은 ‘업무방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판단을 한 바 있다.(2010도410) 당시 재판부는 특정 신문들의 광고주들에게 광고중단을 압박한 사건에서 불매운동을 주도한 피고인들의 행위가 ‘업무방해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다. 광고주들에 대하여는 업무방해죄의 ‘위력(威力)’에 해당하지만, 신문사들에 대하여는 직접적인 ‘위력(威力)’의 행사가 있었다고 보기에 부족하다는 판단이었다.
이 판결에서 법원은 소비자가 구매력을 무기로 상품이나 용역에 대한 자신들의 선호를 시장에 실질적으로 반영하기 위한 집단적 시도로 하는 소비자불매운동은 헌법 제124조를 통해 제도로서 보장된다고 설명했다.
그래픽= 임종철 디자인 기자헌법 제124조엔 “국가는 건전한 소비행위를 계도하고 생산품의 품질향상을 촉구하기 위한 소비자보호운동을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한다”고 돼 있다. 소비자불매운동이 헌법에 보장된 ‘소비자보호운동’의 일환으로 봐야한다는 게 대법원 논리였다.
그러면서 대법원은 일반 시민들이 특정한 사회, 경제적 또는 정치적 대의나 가치를 주장·옹호하거나 이를 진작시키기 위한 수단으로서 하는 소비자불매운동도 ‘소비자보호운동’까지는 아니더라도 헌법 제21조에 의해 보장되는 ‘정치적 표현의 자유’나 헌법 제10조에 내재된 ‘일반적 행동의 자유’라는 관점에서 보호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부연했다.
대상 기업에 대한 불이익 또는 피해 가능성만을 들어 곧바로 형법상 업무방해죄로 볼 수는 없다. 다만 전체 법질서상 용인될 수 없을 정도로 사회적 상당성을 갖추지 못한 때에는 그 행위 자체가 위법한 세력의 행사가 돼 업무방해죄를 구성할 수도 있다.
법원은 불매운동의 업무방해죄 구성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선 불매운동의 목적, 경위, 대상 기업의 선정이유 및 불매운동의 목적과의 연관성, 대상 기업의 사회·경제적 지위와 거기에 비교되는 불매운동의 규모 및 영향력, 불매운동 참여자의 자발성, 불매운동 실행과정에서 다른 폭력행위나 위법행위의 수반 여부, 불매운동의 기간 및 그로 인하여 대상 기업이 입은 불이익이나 피해의 정도, 그에 대한 대상 기업의 반응이나 태도 등 제반 사정을 종합적·실질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고 판시했다.(2010도410)
따라서 현재까지 진행되고 있는 일본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은 법원 판례에 비춰봐도 '적법'하다. 반면 수원 유니클로 매장에서 발생한 립스틱 테러는 형사 처벌도 받을 수 있는 범죄행위다.
박의준 변호사(머니백 대표)는 "고의로 의류를 훼손한 행위는 재물손괴죄에 해당한다"며 "만약 불매운동 목적으로 유니클로의 업무를 방해하려는 의도로 위력을 행사한 것으로 인정된다면 업무방해죄도 검토해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유동주 기자 lawmaker@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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