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탄가정 이혼막는 '유책주의' 논란
"이혼 막기 보단 유책배우자 배상책임 늘려야"
영화감독 홍상수씨의 이혼청구 기각을 계기로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를 배척하는 '유책주의'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사실상 혼인유지가 불가능한데 이를 법으로 막는 것이 타당한지에 대한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결혼도 이혼도 본질적으로 인간의 자유" = 유책주의는 배우자가 혼인의무에 위반되는 행위를 저지른 경우, 상대 배우자에게만 재판상 이혼청구권을 인정하는 제도다. 반면 혼인관계가 사실상 회복될 수 없는 상태에 이른 경우 어느 배우자에게도 책임을 묻지 않고 이혼을 허용하는 것을 파탄주의라 말한다. 1965년 대법원 판결 이후 우리 법원은 원칙적으로 유책주의를 유지해 왔다. 홍 감독의 이혼청구가 배척되자 유책주의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다.
한양대학교 박찬운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15일 "인간이 결혼을 선택하는 것도, 그것에서 벗어나는 것도 본질적으로 자유"라며 "국가는 경우에 따라 그 자유를 일부 제한할 수 있지만, 혼인관계가 파탄났음에도 혼인해소를 제한하는 것은 하나의 폭력"이라고 주장했다.
김아인 변호사는 17일 "혼인을 강제로 유지하는 것이 부부 모두 불행하다는 것을 의뢰인도, 변호사도, 판사도 알고 있다"며 "법원은 아직도 '가정은 유지되어야 하고, 축출이혼을 방지해야 한다'는 과거의 가치관에 사로잡혀 불행한 가정을 강제로 유지시킨다"고 말했다.
박범일 변호사는 "국제결혼을 한 외국인 중에서 가출해 한국인 배우자와 연락을 두절하고 생활하는 경우가 있는데, 유책주의 때문에 이혼을 못하는 경우가 있다"며 "배우자가 이혼을 청구하지 않으면 고국에 돌아가도 재혼이 어려운 경우가 생긴다"고 말했다.
◆"파탄주의 따르면, 축출이혼 못 막아" = 그러나 아직 유책주의를 따르는 것이 맞다는 의견도 있다. 축출이혼(경제권을 가진 사람이 상대를 쫓아내듯 하는 이혼)을 막기 어렵다는 것이 주된 이유다. 배진석 변호사는 "파탄주의로 가면 국가가 혼인을 보호해주지 않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유책주의가 맞다"며 "간통죄가 폐지될때도 '축출이혼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에 대한 비판이 많았다"고 밝혔다. 그는 "요즘 재판상 이혼할 때 유책배우자가 위자료를 3000만원에서 많아야 5000만원을 내는데, 파탄주의로 변경하려면 위자료 액수부터 늘려야 한다"고 덧붙였다. 임경숙 변호사는 "아직까지 남편이 경제적, 사회적으로 아내보다 우월한 지위에 있는 경우가 훨씬 많다"며 "이런 남편이 바람을 피고 가장을 파탄시켰으면서 자신의 사랑을 이유로 아내에게 이혼을 종용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유책배우자의 이혼을 허용하더라도 위자료 액수를 대폭 올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지욱 변호사도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를 무조건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실체적인 혼인관계가 형해화된 이상 양육비, 위자료 등을 통해 책임을 지게끔 결정해야지, 혼인관계를 유지하겠다는 진실한 의사가 없음에도 국가가 혼인생활을 강제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2015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6인의 판사도 반대의견을 통해 "혼인파탄에 책임이 없는 배우자에 대해 재판상 이혼을 허용할 경우에도, 혼인관계 파탄으로 입은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의 액수를 정할 때 주된 책임이 있는 배우자의 유책성을 충분히 반영함으로써 상대방 배우자에게 실질적인 손해배상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해 상대방 배우자가 이혼 후에도 혼인 중에 못지 않은 생활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함으로써 이혼청구 배우자의 귀책사유와 상대방 배우자의 보호 및 배려 사이에 균형과 조화를 도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 현행 법이 유책주의를 택하고 있는 상황에서 판사에게만 재량권을 발휘하라는 것은 과도한 요구라는 지적도 있다. 파탄주의를 반영한 입법을 통해 해결해야지 판사의 재량권을 요구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것이다.
[관련기사]
▶ [기고] 유책주의와 파탄주의